지난 글에서 HBF(고대역폭 낸드플래시)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짚어봤다면,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2026년 8월 초 미국에서 열린 메모리 반도체 전시회 ‘FMS 2026’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회가 아니라, 앞으로 몇 년간 AI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가를 노선 경쟁이 처음으로 표면화된 자리였습니다.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손잡고 HBF 표준 규격을 공개하며 구글, 텐스토렌트 같은 외부 기업들을 끌어들인 개방형 컨소시엄 전략을 택한 반면, 삼성전자는 zHBM과 z낸드-O라는 독자 기술을 앞세워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한 번에 아우르는 수직 통합 전략으로 맞섰습니다. 같은 목표, 즉 AI 가속기의 메모리 병목을 푸는 것을 놓고 두 회사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 셈입니다. 이 노선 차이는 단순한 기술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누가 표준을 쥐고 누가 뒤따라가는 위치에 서게 될지를 가르는 AI 반도체 지형 재편의 신호탄으로 읽힙니다. 이번 글에서는 HBF가 촉발한 이 지형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AI 반도체 지형이란 무엇인가 — 도로망과 물류 허브의 비유
AI 반도체 지형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도로망과 물류 허브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GPU라는 공장이 아무리 좋아도, 원자재(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도로(메모리 대역폭)가 좁으면 생산 속도는 도로의 한계에 갇히게 됩니다. HBM이 그동안 이 도로 역할을 해왔다면, HBF는 새로운 우회 도로이자 대형 물류창고를 함께 짓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새 도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까느냐에 따라 물류망 전체의 주도권이 달라집니다. SK하이닉스가 택한 방식은 공용 도로망을 까는 것입니다. 오픈 컴퓨트 프로젝트(OCP)를 통해 HBF 표준을 공개하고, 구글이나 텐스토렌트 같은 다양한 기업이 이 표준 위에서 각자의 칩을 설계할 수 있도록 열어둔 것입니다. 도로를 먼저 깔아두면 그 위를 달리는 차량(고객사)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생태계 확장 전략입니다.
반면 삼성전자가 택한 방식은 사유 물류단지에 가깝습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한 지붕 아래서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종합반도체기업의 강점을 살려, zHBM처럼 메모리를 가속기 위에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이동 거리 자체를 줄이는 맞춤형 설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표준을 널리 퍼뜨리기보다, 고객사별로 최적화된 반도체를 원스톱으로 설계·생산해주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두 전략 모두 메모리 병목을 해결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하나는 생태계를 넓히는 데, 다른 하나는 통합 역량으로 차별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AI 반도체 지형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구분 | SK하이닉스 전략 | 삼성전자 전략 | 핵심 차이 |
|---|---|---|---|
| 핵심 기술 | HBF(샌디스크 공동개발) | zHBM·z낸드-O(독자개발) | 협업형 vs 독자형 |
| 표준화 방식 | OCP 개방형 표준, 컨소시엄 확대 | 사내 통합 기술로 대응 | 생태계 확장 vs 수직 통합 |
| 주요 참여사 | 구글, 텐스토렌트 등 컨소시엄 | 삼성 파운드리·패키징 내재화 | 외부 동맹 vs 내부 완결 |
| 겨냥 시장 | 대용량 추론 시장 | 고성능·맞춤형 가속기 시장 | 범용 확산 vs 프리미엄 맞춤 |
지형 변화의 세 가지 축 — 표준, 공급망, 패키징
이번 HBF발 지형 변화는 크게 세 가지 축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축은 표준 주도권입니다. 과거 HBM 초기에는 각 메모리 제조사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HBF는 처음부터 오픈 컴퓨트 프로젝트라는 개방형 산업 표준화 기구를 통해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단순히 제품 하나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업계 전체가 따르는 규칙 자체를 정의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표준을 먼저 쥔 기업은 이후 생태계가 커질수록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되므로, 이는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 됩니다.
두 번째 축은 공급망 재편입니다. 기존에는 GPU 제조사가 HBM 공급사를 선택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조였다면, 이제는 GPU·ASIC 설계, HBM, HBF, 패키징, 기판, 웨이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 전체가 동시에 맞물려 움직이는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AI 반도체 경쟁력이 더 이상 “누가 가장 좋은 칩을 설계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밸류체인 전체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조율할 수 있느냐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축은 패키징 기술의 부상입니다. zHBM처럼 메모리를 가속기 위에 직접 쌓는 방식이 등장하면서, 첨단 패키징 기술 자체가 메모리 제조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TSMC와 인텔 같은 파운드리 기업들이 첨단 패키징 경쟁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 지금 이런 지형 변화가 나타났나 — 배경 요인
이 지형 변화의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AI 훈련에서 추론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훈련 단계는 최고 성능의 HBM이 필수적이지만, 추론 단계에서는 방대한 모델 가중치를 얼마나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저장·호출하느냐가 더 중요해집니다. 이 차이가 HBF처럼 용량에 강점을 둔 메모리가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여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두 번째 배경은 메모리 공급 부족의 구조화입니다. 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웨이퍼와 패키징 공정까지 공급 부족이 확산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들은 HBM 하나에만 의존하기보다 CXL, PIM, HBF 등 여러 차세대 메모리 기술로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 번째 배경은 맞춤형 AI 반도체 시대의 개막입니다. 빅테크들이 엔비디아 GPU 외에도 자체 설계 AI 가속기(ASIC)를 늘려가면서, 표준화된 범용 메모리와 고객 맞춤형 통합 솔루션 양쪽에 대한 수요가 동시에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개방형 표준화 전략과 삼성전자의 원스톱 통합 전략이 각각 다른 고객군을 겨냥하며 공존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배경이 맞물리면서, AI 반도체 지형은 이제 단일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전략이 동시에 경쟁하는 다극화된 양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HBF 경쟁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나비효과
HBF를 둘러싼 표준 경쟁 하나가 촉발한 파장은 메모리 제조사 두 곳의 대결로 끝나지 않습니다. 팹리스, 파운드리, 클라우드 기업까지 순차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단계 | 변화 내용 | 관련 주체 | 실제 파급 효과 |
|---|---|---|---|
| 1단계 | HBF 표준 공개, 컨소시엄 결성 | SK하이닉스·샌디스크·구글·텐스토렌트 | 개방형 생태계 조기 확산 시도 |
| 2단계 | 삼성 독자 기술 zHBM·z낸드-O 공개 | 삼성전자 | 수직 통합형 맞춤 설계 시장 형성 |
| 3단계 | 국내 NPU 팹리스 생태계 주목 | 퓨리오사AI·리벨리온·딥엑스 등 | HBM+HBF+NPU 공급망 재편 수혜 기대 |
| 4단계 | 패키징·파운드리 경쟁 심화 | TSMC·인텔·삼성 파운드리 | 첨단 패키징이 새로운 병목이자 경쟁력으로 부상 |
흥미로운 대목은 이 경쟁이 메모리 제조사 두 곳의 승패로만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HBF 생태계가 개방형으로 확산되면, 이를 활용하는 국내 NPU 팹리스 기업들이나 이들과 연결된 클라우드 기업들도 함께 수혜 구간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삼성전자의 수직 통합 전략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면, 파운드리와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종합 역량을 갖춘 기업들의 협상력이 커지는 방향으로 지형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즉 이번 나비효과는 승자가 하나로 정해지는 게임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기업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재편되는 다층적 구조 변화에 가깝습니다.
투자자 실전 대응 전략
- 양사의 샘플 공개 일정 캘린더에 표시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F·차세대 메모리 샘플 공개 시점은 중장기 주가 방향을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어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 컨소시엄 참여 기업 확장 추이 확인하기: 구글, 텐스토렌트 외에 얼마나 많은 기업이 HBF 개방형 표준에 합류하는지가 SK하이닉스 전략의 성패를 가늠하는 지표가 됩니다.
- 패키징·파운드리 밸류체인까지 시야 넓히기: 메모리 제조사만 볼 것이 아니라, 첨단 패키징과 파운드리 공정을 담당하는 기업들의 경쟁력 변화도 함께 살펴야 전체 지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 국내 NPU 팹리스 생태계 간접 노출 고려하기: 비상장 NPU 기업과 연결된 상장 클라우드·서비스 기업들이 HBM+HBF+NPU 공급망 재편의 간접 수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 기업을 ‘HBM 기업’이 아닌 ‘메모리 플랫폼 기업’으로 재평가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단순 HBM 공급사로만 보지 말고, HBM·HBF·패키징을 아우르는 통합 공급망 기업으로 접근 관점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 원칙: AI 반도체 지형 변화는 특정 기업의 승리로 단번에 결정되지 않습니다. 표준화 속도, 컨소시엄 확장, 패키징 경쟁력이라는 세 축을 함께 추적하며 판단하는 것이 지형 변화를 읽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주목해야 할 실제 사례
2026년 8월 열린 FMS 2026은 이 지형 변화가 실제로 가시화된 첫 무대였습니다.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공동 개발한 HBF 첫 표준 규격을 공개하며 구글과 텐스토렌트가 참여한 개방형 컨소시엄 전략을 선보였고, 삼성전자는 zHBM과 400단을 넘어서는 10세대 V10 BV-NAND, z낸드-O 등을 동시에 공개하며 수직 통합 역량을 강조했습니다. 앞서 2025년 8월에는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가 HBF 규격 표준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2027년 첫 양산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 구분 | 주체 | 발표 내용 | 시사점 |
|---|---|---|---|
| 사례 1 | SK하이닉스·샌디스크 | HBF 첫 표준 규격 공개(FMS 2026) | 개방형 생태계 전략 본격화 |
| 사례 2 | 구글·텐스토렌트 | HBF 컨소시엄 참여 | 외부 빅테크의 표준 채택 신호 |
| 사례 3 | 삼성전자 | zHBM·z낸드-O·V10 BV-NAND 공개 | 독자 수직 통합 전략으로 맞대응 |
| 사례 4 | 국내 NPU 팹리스 | HBM+HBF+NPU 공급망 수혜 기대 언급 | 메모리 경쟁이 팹리스 생태계까지 확산 |
결론 — 승자독식이 아닌 다극 경쟁 구도로
낙관적 시각에서 보면, HBF를 둘러싼 이 경쟁은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긍정적인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두 세계적 메모리 기업이 서로 다른 전략으로 동시에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이 포스트 HBM 시대에도 핵심 플레이어로 남을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개방형 표준과 수직 통합이라는 두 전략이 공존하면, 오히려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지면서 두 기업 모두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신중한 시각에서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HBF가 기술적으로는 타당하더라도 아직 상용화 이전 단계이며, 실제 시장 영향을 판단하려면 주요 제조사의 공식 양산 시점과 표준화 완료 시기를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합니다. 삼성전자가 HBF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행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 경쟁의 최종 승자를 지금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근거가 됩니다.
구조적·중립적 시각에서 보면, 이번 지형 변화는 단일 표준의 승리보다 여러 아키텍처의 공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zHBM은 최고 성능이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 시장을, HBF는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는 추론 시장을 각각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기술이 서로 다른 용도로 시장에서 함께 살아남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승자와 패자는 특정 기술 하나가 아니라, 각 진영이 얼마나 빠르게 고객사를 확보하고 실제 양산 검증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구조적 시각에 가장 공감하는 편입니다. AI 반도체 지형은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완전히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용도별로 여러 아키텍처가 공존하는 다극화된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독자분들께 드리고 싶은 실천적 당부는, 어느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지 성급히 예단하기보다, 각 기업의 표준화 진행 속도와 실제 고객사 확보 소식을 꾸준히 확인하며 판단을 업데이트해 나가시라는 것입니다. HBF의 기본 개념과 등장 배경을 다룬 HBF 적층낸드플래시란 무엇인가 — AI 시대 새로운 메모리 계층이 필요한 이유 글이나, AI 메모리 전반의 발전 흐름을 정리한 AI 시대 메모리 종류와 발전 과정 — HBM부터 CXL까지 완전 정리 글도 함께 참고하시면 이번 지형 변화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에이펙스 트렌드 에셋(Apex Trend Asset)은 앞으로도 시장 흐름을 실무 관점에서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HBF가 바꿀 AI 반도체 지형 핵심 인사이트였습니다.
Q1. HBF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은 어떻게 다른가요?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함께 개방형 표준을 공개해 생태계를 넓히는 전략을, 삼성전자는 zHBM 등 독자 기술로 수직 통합 역량을 강조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Q2. HBF와 zHBM은 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하나요?
완전히 겹치지는 않습니다. zHBM은 최고 성능이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을, HBF는 대용량 데이터 처리가 중요한 추론 시장을 주로 겨냥하고 있습니다.
Q3. 이 경쟁으로 국내 팹리스 기업도 영향을 받나요?
네, HBM·HBF·NPU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국내 NPU 팹리스 기업들과 이들과 연결된 상장 클라우드 기업들도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Q4. HBF 표준화는 언제쯤 마무리되나요?
2026년 8월 첫 표준이 공개됐고 2027년 첫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아직 상용화 이전 단계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평가합니다.
Q5. AI 반도체 지형은 결국 한 기업이 독식하게 되나요?
가능성은 낮습니다. 용도별로 서로 다른 메모리 아키텍처가 공존할 것으로 보여, 여러 기업과 기술이 함께 경쟁하는 다극화된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